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뇌는 멈춘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흔히 “아, 나 이거 알아”라고 반응합니다. 이런 반응은 일견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어 보이지만, 실은 그 순간 뇌는 학습을 멈추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뇌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판단되면 더 이상 그 정보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인지심리학에서는 “지식의 착각(Illusion of Knowing)”이라고 부릅니다.
지식의 착각은 특히 정보가 익숙할수록 더 쉽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자주 듣는 단어, 자주 접한 이론, 누구나 말하는 상식 등에 대해 우리는 쉽게 “이건 나도 알아”라고 반응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설명해보라 하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가 내용을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접해봤기 때문에 안다고 착각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착각은 학습을 방해할 뿐 아니라, 의사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한 정보는 다시 검토되지 않고, 잘못된 전제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정보 위에서 판단을 내리게 되고, 이는 반복적인 실수와 오류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이 착각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나는 잘 알고 있어’라고 확신할수록, 새로운 관점을 배척하게 되고, 뇌는 더 이상 질문을 멈추게 됩니다. 그렇게 똑똑해지고 싶은 욕망이 오히려 사고의 정체 상태를 만들어버리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됩니다.
진짜 지적인 사람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 정보, 정말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습관이 바로, 생각을 멈추지 않는 뇌의 조건입니다.
표면적 이해와 진짜 이해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표면적인 이해에 머무른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개념을 알고 있고, 대략적인 흐름을 설명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설명이나 연결은 불가능한 상태죠. 이런 상태를 인지심리학에서는 “얕은 처리(shallow processing)”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은 “깊은 처리(deep processing)”이며, 진짜 이해는 바로 이 깊은 처리에서 발생합니다.
표면적 이해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칩니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라는 정의를 외우는 것입니다. 반면, 진짜 이해는 그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어떤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어 있는지, 실생활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수준에서 비로소 우리는 정보를 자기화하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교육과 학습 시스템이 ‘표면적 이해’만으로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기억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암기한 정보’가 ‘이해한 정보’로 오해되는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정보는 쉽게 사라지고, 응용이나 설명이 불가능한 지식으로 남습니다.
또한 표면적 이해에 머무는 사람은 새로운 정보와 연결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의 구조가 약하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이 들어와도 기존 지식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떠도는 정보’로 남습니다. 반면,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진 사람은 지식 간의 연결망을 유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고, 이는 사고력의 근간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안다’고 할 때, 그걸 예시로 설명할 수 있는가,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는가, 다른 개념과 연결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세요. 이 세 가지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건 ‘이해한 것’이 아니라 ‘보았던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뇌는 기억보다 연결을 통해 더 오래 사고를 유지합니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연결 훈련이, 진짜 똑똑해지는 길입니다.
‘안다는 착각’을 깨는 실전 훈련법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 것을 실제로 검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주 강력한 학습 훈련이 됩니다. 다음은 ‘지식의 착각’을 깨고 진짜 사고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실전 전략 5가지입니다. 이 방법들은 단순한 복습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고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① 파인만 테크닉 사용하기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진짜 이해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원칙을 적용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듯 간단하고 명확하게 정리해보세요. 용어 없이, 비유나 사례를 활용해서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
② 책 없이 요약하기
어떤 책이나 강의를 듣고 나서 바로 책을 덮고, 기억나는 내용을 손으로 써보는 연습을 하세요. 말이 아닌 ‘쓰기’로 해야 진짜 기억과 사고력이 검증됩니다. 이 방법은 기억력을 확인하는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 내가 빈약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③ 가짜 질문 리스트 만들기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에 대해 질문 리스트를 작성해보세요. 예: “이 개념은 언제 처음 나왔는가?”, “반대되는 개념은 무엇인가?”, “현실에선 어떻게 적용되는가?” 같은 질문입니다. 이 리스트를 채우지 못한다면, 그건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익숙할 뿐’이라는 신호입니다.
④ 동료나 친구에게 가르쳐보기
공부한 내용을 친구나 동료에게 설명하거나 가르쳐보세요. 설명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 어색한 부분은 내가 진짜 이해하지 못한 영역입니다. 이 방식은 단순한 복습이 아닌, 사고의 구조를 점검하는 훈련으로 작용합니다.
⑤ ‘착각 리스트’ 만들기
하루를 마치며 ‘오늘 내가 안다고 착각했던 것’을 적어보세요. 그 중 실제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이해가 부족했던 것들을 기록하면서 자기 인식과 사고 패턴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이 습관은 꾸준히 실천하면 놀라운 효과를 발휘합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사고를 막는 진짜 이유입니다.
지식의 착각은 똑똑한 척 하게 만들지만, 진짜 똑똑해지는 길에서는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이제부터는 아는 척보다 정말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시작해보세요.
그게 바로 진짜 지적 성장의 출발점입니다.